• 1763년 한학상통사(漢學上通事)로 통신사 사행에 참여한 오대령(吳大齡, 1701-?)이 지은 사행일기이다. 오대령의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대년(大年), 호는 장호(長湖)이다. 1717년 정유(丁酉) 식년시(式年試) 역과(譯科)에 1위로 합격하였고, 사역원 첨정(僉正)을 지냈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단, 11월 27일자 일기를 보면, 정사 조엄(趙曮, 1719-1777)에게 “나이는 예순셋이고 연경(燕京)에 열 번, 심양(瀋陽)에 두 번, 봉성(鳳城)에 한 번 다녀왔다”고 말하는 내용이 있고, 11월 29일자 일기를 보면 부사 이인배(李仁培, 1716-1774)에게 사행을 가지 않은지 15년이 되었으나 일본을 구경하기 위해 왔다고 말하는 장면을 찾을 수 있다. 같은 시기의 다른 사행록에, 오대령이 병을 핑계로 분수에 맞지 않게 가마를 얻어 타고 다녀 빈축을 샀다는 기술이 보인다. 그가 십여 차례의 중국 사행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은퇴한 중국어 역관으로서, 일본 구경을 위해 고령의 몸을 이끌고 일부러 자원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명사록』은 사행일기와 「추록(追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행일기는 1763년 8월 3일부터 이듬해 7월 8일 복명(復命) 때까지 매일 기록되어 있다. 「추록(追錄)」은 문견록으로, 일본의 풍속・쓰시마・유구국(琉球國)의 지리와 역사에 대해 간략히 서술되어 있다. 분량이 많거나 관찰이 세밀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 사행의 경험이 풍부한 역관이기 때문에 중국 북경(北京)을 기준으로 삼아 일본의 도시와 문물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편이다. 따라서 일본을 과장하거나 비하하는 경향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연행 경험이 있는 인물의 기록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할수 있다. 본문의 앞장에 붙여진 원고지 일부에 쓰여 있는 것을 통해, 1763년 영조 39년 한학상통사 오대령의 일기를 1928년 구매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목록에 포함되었다. (xsd:string)
  • Envoy visit record written by Oh, Dae-Ryung(吳大齡, 1701-?) who visited Japan as a Chinese letter export of the Tongshinsa corps in 1763. Oh was from the Haeju Oh clan, and his courtesy name is Daenyun(大年), and penname is Changho(長湖). Not much has been known about his life, but he took the 1st place in translation examination in 1717, and served Cheumjung(僉正) post at Joseon’s foreign language translation and education institution Sayeokwon. On his diary on Nov 27, he said to Tongshinsa head Cho, Eum(趙曮, 1719-1777), “I am 63 years old. I have been to Beijing 10 times, Shenyang, twice, and Fengcheng, once.” On Nov 29, he said to Busa Lee, In-Bae(李仁培, 1716-1774), “I came because it has been 15 years since my last envoy visit, and I want to look around Japan.” It is mentioned in other author’s envoy visit record that Oh made many people frown because he borrowed and travelled in a palanquin by making excuses that his condition is not good, which is unacceptable considering his social rank. These tell us that as a retired Chinese translator who went to China dozen times before, he applied the envoy visit to Japan, despite his age, simply because he wanted to travel Japan. 『Myungsarock』 has Oh’s travel diary and 「Churok(追錄)」. Oh wrote diaries daily from August 3, 1763 to July 8 of the following year, when he returned and reported the visit. 「Churok(追錄)」is a travelogue in which he briefly recorded Japanese culture, along with the Tsushima Island and the Ryukyu Kingdom’s geography and history. His log does not have detailed observations of long pages; yet as a seasoned envoy staff, his comparison analysis of Japan’s cities and cultures against those of Beijing, is quite objective. He rarely exaggerated nor downplayed Japan, which makes his record valuable as a literature by an author with multiple envoy visit experiences. What was recorded in the manuscript attached to the cover page of its body part, implies that Oh’s record written in 1763 (Yeongjo 39) was sold later in 1928. It was listed on the UNESCO's Memory of the World Programme register in 2017. (rdf:langString) (en)
  • 명사록 (rdf:langString) (ko)
  • PU (xsd:string)
  • 吳大齡(朝鮮) 著 (xsd:string)
  • National Library of Korea (rdf:langString) (en)
  • 국립중앙도서관 (xsd:string)
  • [刊寫年未詳] (xsd:string)
  • 2020-11-30 (xsd:date)
  • 2020-11-30 (xsd:date)
  • KOL000009301 (xsd:string)
  • [刊寫年未詳] (xsd:string)
  • 82張;27.0 x 19.0 cm (xsd:string)
  • National Library of Korea (rdf:langString) (en)
  • 국립중앙도서관 (xsd:string)
  • true (xsd:string)
  • Myungsarock (rdf:langString) (en)
  • 溟槎錄 (xsd:string)
  • 명사록 (rdf:langString) (ko)
  • chi (xsd:string)
  • Korea (xsd:string)
  • [刊寫地未詳] (xsd:string)
  • [刊寫者未詳] (xsd:string)
  • [刊寫年未詳] (xsd:string)
  • 명사록 (xsd:string)
  • Myungsarock (rdf:langString) (en)
  • 溟槎錄 (xsd:string)
  • 명사록 (rdf:langString) (ko)